태어난 지 사진에 찍힌 날짜를 보니, 한 한 달 하고 열흘 쯤 되었을 때네요.
저를 감싸고 있던 포대기랄까, 저 포근하고 폭신거릴 듯이 보이는 하얀 이불에 대해서는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어릴 적, 갓난쟁이 시절이었을 테니까요.
다만, 이 사진을 고르게 된 배경이, 절 받치고 있는 제 등뒤의 커다란 쿠션 때문입니다. 저 쿠션은 기억하기로, 저희 엄마가 만드신 물건이에요. 저 쿠션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초까지 저와 함께 집에 있었답니다.
처녀 적에 의상실을 하신 엄마는 저 쿠션 말고도, 제가 꼬꼬마 시절에는 껴안고 잘 만한 고양이 모양의 베개인형을 만들어 주셨어요.
물론, 그 고양이인형은 식탁보를 만들고 남은 천으로 만드신 거였구요.
저 사진의 쿠션 하나를 보는 순간, 그런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심지어는, 제가 바느질 해서 만든 소품을 보여드리자, 제게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하이고오.. 야야, 니 이런 건, 네 엄마 솜씨 꼭 빼다 박았데이.”
하고 말씀하시던 외할머니의 말씀과 목소리까지도 생생히 떠오르더라구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품도 문득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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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쿠션 참 편하네, 하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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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쿠션 참 편하네, 하아암.
- 태어난 지 사진에 찍힌 날짜를 보니, 한 한 달 하고 열흘 쯤 되었을 때네요.
저를 감싸고 있던 포대기랄까, 저 포근하고 폭신거릴 듯이 보이는 하얀 이불에 대해서는 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어릴 적, 갓난쟁이 시절이었을 테니까요.
다만, 이 사진을 고르게 된 배경이, 절 받치고 있는 제 등뒤의 커다란 쿠션 때문입니다. 저 쿠션은 기억하기로, 저희 엄마가 만드신 물건이에요. 저 쿠션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초까지 저와 함께 집에 있었답니다.
처녀 적에 의상실을 하신 엄마는 저 쿠션 말고도, 제가 꼬꼬마 시절에는 껴안고 잘 만한 고양이 모양의 베개인형을 만들어 주셨어요.
물론, 그 고양이인형은 식탁보를 만들고 남은 천으로 만드신 거였구요.
저 사진의 쿠션 하나를 보는 순간, 그런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심지어는, 제가 바느질 해서 만든 소품을 보여드리자, 제게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하이고오.. 야야, 니 이런 건, 네 엄마 솜씨 꼭 빼다 박았데이.”
하고 말씀하시던 외할머니의 말씀과 목소리까지도 생생히 떠오르더라구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품도 문득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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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따라오다 발 밟지 마라,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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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따라오다 발 밟지 마라, 이번엔?
- 그렇게 조금 더 자라 저는 귀엽고 순한 남동생이 생겼습니다.
저랑 남동생은 두 살 터울인데, 제가 첫째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질투를 해서 툭하면 동생을 울리곤 했대요. 어린 애가 또 얼마나 영악하게 굴었냐면, 사람들 앞에서는 애를 “아이, 예쁘다아, 예쁘다아.”라고 하면서 쓰다듬다가 사람들만 없으면 동생을 톡 때리고, 콕 쥐어박아서 울렸다네요? 하하.
그런 동생이 걸음마를 슬슬 배워야 할 즈음이었을까요? 보행기를 타기 시작했는데요. 저 보행기는, 제가 어릴 적에도 탔던 걸, 동생이 생기면서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동생이 타기 시작했답니다. 말도 잘 못하고 옹알이나 고작해야 할 즈음의 동생이 항상 어눌한 발음으로 “음마”하고 엄마를 부르고, “눌라”하고 절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는데요. 한번은 저 보행기를 타고, 저 옥상에서 같이 사진을 찍기 전이었나?
제가 맨발에 사진 속 분홍색 슬리퍼를 신은 적이 있는데, 동생이 저를 따라 오다가 그만 제 발을 보행기 바퀴로 밟아버린 거예요.
아프고, 욱한 마음에 동생을 쥐어박았던가. 그래서 동생이 서럽게 운 적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저 보행기를 탄 동생과 찍힌 사진들을 보면 으레 그 때가 먼저 떠오르죠.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고 든든한 동생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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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학가기 전 마지막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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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학가기 전 마지막 운동회
- 이 사진을 보면 “어라?”하고 보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네, 대망의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자, 그 중 나름 하이라이트였던 꼭두각시 춤을 커플로 추던 날이랍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와 국민학교를 섞어 쓰던 때라... 하하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였나요? 그 때부터 국민학교가 초등학교가 되었답니다. 저 학교는 제가 전학가기 전의 학교예요. 아버지가 건축 일을 하시면서 늘 갖고 계시던 꿈이 우리 집을 지어서 그 집에 사는 일이었거든요.
그 때는 아직 집을 지어서 갖기는 전이었지만, 그 쪽으로 가야 아마 아버지께서 현장엘 다니고 집에 오시기 편해서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갔던 것 같아요.
전학가면서 친구들하고 헤어진다고 어지간히도 속상해하던 일도 생각나네요.
그리곤 이사를 간 후론 늘 다니던 문구(문방구라고 했었답니다)에도 그 앞만 지나가면 “어? 아직도 저기 있네?”라며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던 일도 있죠. 저 꼭두각시 춤에는 비밀이 있어요. 제 짝으로 지금 사진에 찍힌 남자 애가 사실.. 춤을 어지간히도 못 추고 못 외우는 거예요! 성격이 좀 남자애 같고 골목대장 같던 저는 그 길로 저 춤을 저 날까지도 제가 다 기억하면서 다음 동작을 저 애에게 귀띔해주곤 했었답니다. 그것마저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더 추억에 남았으려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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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발상에 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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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 발상에 반했어
- 이 학교는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예요.
신생학교이자, 집에서도 가깝고, 교복이 다른 학교들보다 예쁘다는 생각에 지원했다가 1지망이 선택이 돼서 운좋게 들어갔던 학교랍니다.
가쿠란이라고 하나요? 그런 차이나 칼라의 교복에, 건물은 또 저렇게 파스텔 톤으로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신생학교라서 선생님들도 의욕이 넘치셨고.. 건물은 다만.. 어쩌다보니, 실험적인 학교라서 중앙현관이 없던 학교랍니다. 그래서인지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는 으레 뛰어서 매점으로 운동장을 가로 질러서 갔다 오는 친구들이 많았고, 저 역시 그랬답니다.
학교 후문과 정문은 늘 헷갈렸는데, 정문은 아파트와 붙어있는 쪽이 정문이었다는 걸 이 학교 학생응로 지낸 지 거의 3년 만에 알았던가요.. 하하하
어쨌든, 학교, 선생님, 학생들, 교복, 근처의 매점들의 맛이나 가격에 모두 반했던 제 고등학교 시절을, 항상 이 사진을 보면서 떠올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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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살만하잖아, 웃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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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살만하잖아, 웃잖아?
- 사실, 아버지의 꿈대로 저희는 아버지가 지으신 멋지고 으리으리한 집에도 살았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의 실수로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을 뻔한 상황까지 갔었죠. 그래서 암울하다 못해, 가족끼리 울고 싸우고 헐뜯고, 정말 잊을 수만 있다면 잊고 싶고 서로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같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답니다.
그런데, 우연히 고양이를 키우게 된 거예요. 키워본, 키우고 계신 분들이라면 아실 걸요? 고양이가 얼마나 웃음을 가져다 주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늘 싸움만 잦았던 우리 집이, 갖고 있던 집도 꿈도 웃음도 다 잃어버렸던 우리 집이, 하루에 한 번씩은 웃을 일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곧 웃기 시작해서인지 웃음이 넘치는 겁니다.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다가 알콜성 치매에까지 이르렀던 분이, 이제는 고양이와 더불어 강아지들을 키우시고, 텃밭을 가꾸시면서 그래도 전보다 많이 양호해지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 사진을 보면, 애교가 넘치고 편안해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슬슬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저 사진의 고양이는 입양되어 간 지 벌써 햇수로만 2년. 사실 그래서 더 골랐어요. 데리고 사는 고양이 두 마리는 늘 보면서 늘 챙기고 하는데, 입양 간 곳에서도 예쁨받고 사랑받으며 잘 크길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이젠 저도 행복하게 추억을 그리며 살까 합니다. 그래도 살만 하니까, 웃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