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공부에 집중해야할 나이 18살. 학업을 위해 잠시 숨겨두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기타를 잡았다. 기타는 내 친구이자, 가족이자 애인이었다.
돈 때문에 그토록 소중했던 기타를 포기했었다. 부모님의 보증문제로 지하방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집이 경매로 팔리고 나서 난 새 집에서 새로운 내 삶을 시작했다. 17살,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것을 얻었다.
그 방에서 난 “앞으로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불안한 나의 미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 사이에서의 갈등은 나를 더 미치게 했다.
학교 축제를 위해 잠시 기타를 다시 잡았던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추억한다. 내가 미치도록 좋아했던 나의 분신 기타. 내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했던 기타.
나를 잠시나마 현실과 단절시켜주었던 기타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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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속의 나 "기타에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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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속의 나 "기타에 미치다"
-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할 나이 18살. 학업을 위해 잠시 숨겨두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기타를 잡았다. 기타는 내 친구이자, 가족이자 애인이었다.
돈 때문에 그토록 소중했던 기타를 포기했었다. 부모님의 보증문제로 지하방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집이 경매로 팔리고 나서 난 새 집에서 새로운 내 삶을 시작했다. 17살,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것을 얻었다.
그 방에서 난 “앞으로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불안한 나의 미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 사이에서의 갈등은 나를 더 미치게 했다.
학교 축제를 위해 잠시 기타를 다시 잡았던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추억한다. 내가 미치도록 좋아했던 나의 분신 기타. 내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했던 기타.
나를 잠시나마 현실과 단절시켜주었던 기타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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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버린 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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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버린 나의 시간
- 내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보냈다.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내게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던 조부모님을 보냈다. 고1때는 할아버지를, 고3때는 할머니를......
어릴 시절의 모든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시골에서 살면서 난 시간이 무엇인지 몰랐다. 시간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조부모님의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나의 생활은 달라졌다. 시간으로 시작해서 시간으로 끝났다. 기상시간, 등교시간, 점심시간, 시험시간 등......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조부모님은 점점 쇄약해지셨다. 오랜만에 조부모님을 만난 장소는 병원이었다.
마지막으로 한줌의 재가 되기 전에 난 두 분의 발을 꽉 만졌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조부모님의 발은 까칠했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해야할 발의 촉감은 참으로 차갑고 딱딱했다. 그 당시 나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거울 속 초라했던 나의 모습 또한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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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첫 번째 turning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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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첫 번째 turning point
-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던 시기가 지나갔다. 나도 대학이란 곳을 가게 됐다. 대학을 간 첫 번째 이유는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학생만 노력한다면 어학연수, 해외인턴십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밤, 낮으로 독하게 노력했고 나는 그 첫 번째 기회를 얻었다. 바로 미국 어학연수였다! 성적 장학생으로 우리 과에서 유일하게 난 미국으로 떠났다. 내 인생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자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물론 나의 방학과 성적장학금을 포기 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모험이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ELS수업을 받으면서 행복한 한 달을 보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나의 선입견과 편견들이 바뀌었다. 아무런 걱정 없는 내 인생의 첫 휴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내게 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플로리다 해변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힘찬 점프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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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두 번째 turning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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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두 번째 turning point
- 미국 어학연수에서 나와 발이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플로리다 대학 안 길거리에 그냥 누워있었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별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별똥별이 떨어졌다. 우리 둘 다 같은 소원을 빌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그 사람과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뻔하게 그 사람과 나는 서로의 반쪽이 되었다. 살기 바빠서 연애라고는 생각도 못해본 나에게 조부모님이 주신 선물인 것 같았다.
정반대인 서로에게 끌렸다. 화초인 남자와, 잡초인 여자가 만나 서로의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돈 모을 궁리만 했던 내가, 쓸 궁리도 하게 되었다. 어리광이라고는 전혀 없던 내가, 힘들 때면 기대기도 하고 피곤할 때면 그 사람의 무릎에 누워 입을 벌린 채 편히 잠을 자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한 첫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본다. ‘나와 발이 참 많이 닮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괜히 미소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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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세 번째 turning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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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세 번째 turning point
- 미국 어학연수의 여운을 잊지 못하고 바로 해외 인턴십을 준비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해외인턴십을 가게 되었다. 이름만으로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두바이에서 4개월을 지냈다.
정부에서도 두바이는 첫 파견이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날씨와 영어발음과 말도 안 되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한 달간은 영어수업을 받으며 두바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부르즈 칼리파‘라 불리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만났다.
화려한 조명과 엄청난 높이 앞에서 받은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평범한 사진을 찍을래야 찍을 수가 없는 빌딩이다. 그리고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난 칼리파에 올라갔다. 가장 높은 빌딩위에 있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나의 과정들을 생각했다. 수많이 많이 흘린 눈물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했다. 조명에 비친 내 눈이 더 반짝였다.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반짝이는 눈’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