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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치매인식개선 공모전 : 사진

  • 교복을 입고….
    내 나이 열아홉이었던 어느 겨울...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백설기처럼 온통 뽀얗고 폭신폭신 해졌다. 나는 출근을 미루고 서둘러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눈 내린 아침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나의 꿈은 숙련된 여공이 아니었다.
    나의 꿈은 멋진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를 숙련된 여공으로 만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했으며 바로 공장에 취직을 하였다. 공장을 다니면서도 내내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학생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교복같은 양장을 맞췄다.
    드디어 오늘 그 교복을 입고서 내가 다니는 공장 근처에 있는 학교 앞으로 가서 교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치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양....
    굽 높은 구두에 쑥스러운 표정이 어색하지만 실제로 더욱 어색한 사실은 뒤에 보이는 학교가 중학교이고 심지어 남학교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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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장관상 - 유현주

  • 엄마의 길 1
    저희 엄마는 2008년 겨울 갑자기 글씨를 못 쓰시고, 10Kg이상 살이 갑자기 빠지시는 일을 있었습니다.
    6개월이상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을 돌아다니다, 피질기저핵변성 증후군으로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그때 나이가 53세.. 초로기 치매입니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피질기저핵 변성 증후군은 좋아질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한 병이고, 가족의 진심어린 간호와 사랑만이 엄마를 도울 수 있다는 병원 원장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힘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엄마이었기에, 가 족들은 엄마의 병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연기한다는 이야기 까지 들어야 했고, 주변 사람들은 가족에게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할아버지,아버지 까지, 그러나 아버지는 힘을 내어 엄마를 열심히 간호하셨고, 지금은 생각보다 훨씬 엄마의 병속도가 늦춰 졌습니다. 위 사진은 엄마가 매일같이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를 위해 새참을 내가시던 길입니다 . 이제는 기억 못하시지만, 어렸을 적 , 제 손을 잡아주시며 함께 지나가던 그 곳을 기억하시는 것 처럼 해맑게 웃으십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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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치매센터장상 - 유태현

  • 오줌싸개와 낡은이(늙은이) 뱃가죽
    오줌싸개, 낡은이 뱃가죽, 오리장 집 아들, 이마빡 면장아들, 세모돌이, 주시경선생…….
    54년전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에 위치한 교동초등학교 6학년 때의 중학교 진학을 위한 과외를 받던 친구들의 빛바랜 모습이다. 한방에서 자고 먹고 공부하던 그때 그 친구들!
    하룻밤 자고 나면 얼굴에 수염을 그려 웃음바다가 되던 시절 . 여행을 가서 이불에 오줌을 싸서 놀림을 받고 울던 나는 그래도 꽤나 의젓하게 담임 황만길선생님 옆에 앉아 있네.
    지금은 60대말 70대 초로의 백발들 이지만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가 3명, 행방을 알수 없는 친구가 3명이나 된다.
    '먼저간 친구들이여 보석 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은 하늘나라에서도 잊으면 안돼' 망각은 치매로 가는 지름길!! 황혼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 지난날을 추억하며 기억력을 길러서 6.25의 가난을 경험한 사나이 답게 치매를 물리치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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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파크상 - 김종환

  • 떙 잡은 날
    1972년 1월 2일, 내가 땡 잡은 날이다. 바로 덕례씨와 결혼을 하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덕례씨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 또한 비단결같이 고왔다.
    덕례씨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된 나는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어서 친구를 졸라 다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지만 덕례씨는 나에게 관심 없었다.
    덕례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구애를 하였고 끈질긴 노력 끝에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덕례씨와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뻤고 내 눈에는 덕례씨만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덕례씨와 결혼하는 날이 다가왔다. 너무나 설레여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덕례씨도 나만큼이나 설레고 떨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서 짐을 풀자마자 코를 골며 잠들었다. 국어사전에 땡잡다의 뜻은 ‘뜻밖에 큰 행운이 생기다’이다. 덕례씨를 만나고 결혼까지 하게 된 나에겐 정말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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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상 - 서소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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